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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 흔든 ‘성인지 감수성’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9-03-13 11:35
조회
757

| 성인지 감수성은 제대로 주목받지 못했다. 여기엔 헌법 원리의 충돌, 권력이동의 역사가 응축되어 있다. 법이 ‘강간 통념’과 ‘최협의설’로 된 흑백 세계에서 회색지대로 갔다는 데 의의가 있다.


성인지 감수성. 한국 사회를 뒤흔든 여섯 글자. 2월1일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를 법정 구속시킨 2심 판결문에 등장한다. 판결문은 나오자마자 논란에 휩싸였는데, 특히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표현이 그랬다. 물증 없이도 ‘감수성’으로 유죄가 나왔다며 분노하는 여론도 있었다. 


지난해 3월9일 수행비서를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검찰에 자진 출석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온라인 남초 커뮤니티에서는 ‘킹인지 갓수성’이라는 표현도 유행했다. 증거가 없는데도 성인지 감수성만 가져다 붙이면 무조건 유죄가 나온다는 조롱이다. 이른바 ‘곰탕집 성추행 사건’(피해자 여성의 진술을 받아들여 성추행 유죄가 나온 사건) 등이 남초 커뮤니티의 공분을 산 역사가 있었는데,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말이 거기에 기름을 부었다. 

어떤 의미로, 이 여섯 글자는 과하게 주목받았다. 성인지 감수성은 2심 재판부 판단의 핵심 논거라고 보기 어렵고, 적극적·급진적인 해석을 도입한 것도 아니며, 대법원 판례를 인용하면서 딱 한 번 등장한다. 하지만 다른 의미로 이 여섯 글자는, 그 야단법석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방식으로 주목받지 못했다. 헌법 원리들 간의 충돌, 한 세대를 넘는 오랜 싸움, 그 결과로 매우 천천히 이루어진 권력이동의 역사가 이 여섯 글자에 응축되어 있다. 이것은 헌법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권력에 대한 이야기다. 즉, 우리 사회를 운영하는 기본계약에 대한 이야기다.

1심에서 무죄를 받았던 안 전 지사는 2월1일 2심에서 징역 3년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1심과 2심 재판부의 판단은 피해자의 증언을 인정하느냐 배척하느냐에서 갈렸는데, 1심 재판부가 배척한 피해자 증언을 2심 재판부는 거의 그대로 인정한다. 이로써 결과가 뒤집힌다. 2심 재판부는 지난해 4월에 나온 대법원 판례(2017두74702)를 인용한다. “법원이 성폭행 성희롱 사건의 심리를 할 때에는 그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도록 유의하여야 한다.” 

“피해자 진술은 원래 증거의 한 종류”

첫눈에 이 판례는 마치 성폭력 사건에서는 “의심스러울 때는 피해자의 이익으로”라고 선언하는 것처럼 읽힌다. 형사법의 대원칙인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를 뒤집은 것 같다. 그래서 남초 커뮤니티 여론은 ‘성인지 감수성’ 판례가 ‘유죄추정 원칙’이라고 비난한다. 성관계는 특성상 물증도 증인도 남기지 않는다. 상대가 동의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건 매우 어렵다. 그러니 서로 동의해 성관계를 맺은 사이에서 여성이 마음을 바꿔 남성이 협박을 했다며 강간으로 고소하면, 남성은 동의서라도 써두지 않는 한 꼼짝 없이 당한다. 자신을 보호할 무기가 하나도 없으니, 이쯤 되면 근대 형법이 아니다.

“바로 그 점 때문에 이 판례가 있다. 성관계의 특성은 성폭행 사건의 특성이기도 하다. 증인도 물증도 없다는 것.” 류영재 판사(춘천지방법원)는 정확히 포인트를 잡아놓고 엉뚱한 소리를 한다는 표정으로 기자에게 말했다. “널리 퍼진 오해와 달리, 형사사건에서 피해자 진술은 원래 증거의 한 종류이자 가장 직접적 증거다. 다만 그 증거의 신빙성을 여러 정황에 비추어 인정하느냐 배척하느냐를 판사가 판단한다. 성폭력 사건은 제3자 증인이 있기 어렵고 대체로 물증도 없기 때문에 피해자 진술 증거의 신빙성을 어떻게 판단하느냐가 더 중요해진다. 피해자 진술과 기타 정황을 고려하여 증거의 증명력이 있다는 판단이 서면 유죄를 선고하고 그 반대라면 배척한다. 증거에 따라 판결하므로 유죄추정과는 전혀 다르다.” 

그러므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은 성폭력 사건에서 특히 중요한 쟁점이다. 2013년 서울고등법원 김상준 부장판사(현 변호사)는 박사학위 논문 <무죄판결과 법관의 사실인정에 관한 연구>를 썼다. 그는 1심 유죄가 항소심(2심) 무죄로 뒤집힌 강력범죄 사건 540건을 분석했다. 이 중 피해자 진술 신빙성이 쟁점인 사건 수는 266건이었다. 그런데 이 266건 중 240건이 성폭력 범죄다. 90.2%에 달한다. 

피해자 진술이 증거라고는 해도, 피해자의 오판이나 변심, 악의적 무고 가능성을 배제하기가 간단치 않다. 다른 가능성에 대한 ‘합리적 의심’을 해소하고 판사가 유죄심증에 도달하려면 더 단단한 증거가 필요해 보인다. 판사에게 가장 안전한 해결책은, 피고인이 피해자를 폭행하거나 협박한 증거가 명백하고 심각할 때만 유죄를 선고하는 것이다. 이것은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형사법의 대원칙에도 부합하는 것 같다. 

형법 제297조는 폭행 또는 협박을 강간 범죄가 성립하는 조건으로 정한다. 법원은 폭행과 협박도 가장 좁은 의미로 해석했다. 반항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하게 곤란할 정도로 명백한 폭행·협박이 있을 때 강간죄를 인정했다. 이런 좁은 해석을 ‘최협의설’이라고 부르는데,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은 다수설이다. 폭행·협박이 명백·심각한 강간은 처벌한다. 그 외에는 강간으로 보지 않는다. 깔끔한 흑백의 세계다(아래 그림).



1990년대 이전까지 강간죄의 보호법익은 ‘정조’였다. 여성의 정절을 지키는 게 강간죄를 만든 목적이었다는 얘기다. ‘보호법익 정조’와 ‘최협의설’의 조합은 지금 관점으로 보면 거의 초현실적인 논리로 이어진다. 정조를 보호받을 자격이 있으려면, 우선 정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숙한 여성이어야 한다. 정숙한 여성은 안전보다도 정조를 중요하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니 오직 항거 불능일 정도로 심각한 폭행·협박으로만 정숙한 여성이 정조를 포기하게 만들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진정한 피해자’에 대한 통념이 만들어진다. ‘진정한 피해자’란 목숨을 잃기 직전까지 저항하고, 강간에 결코 협조하지 않고(달라붙는 청바지를 입은 정숙한 여성은 강간이 불가능하다), 가해자를 철저하게 피해 다니며, 정조를 잃었으니 일상이 무너질 것이다. 강간 피해자라면 마땅히 이러할 것이라는 식의 선입견을 법조계에서는 ‘강간 통념’이라고 부른다. 40대 자영업자 이 아무개씨는 2013년 10월 자신의 회사 20대 여직원을 차에서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1심 재판부는 이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는데, 피해자가 스키니진을 입어서 강제로 벗기기 어렵다는 점을 판단 근거 중 하나로 들었다. 이 사건은 2심에서 유죄로 뒤집혔다. 

성폭력 사건에서 피고인 측 변호인들은 “피해자의 행동이 피해자답지 않았다”라는 주장을 집중적으로 편다. 안희정 전 지사 재판에서 피고인 측 변호인은 이런 주장을 내놓았다. “사건 이후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보낸 문자메시지에서 이모티콘이나 애교 섞인 표현으로 친근감을 표시하는 등 성범죄 피해자라면 도저히 보일 수 없는 행동을 하였다.” 2심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강간 통념과 최협의설이 만나 만들어내는 깔끔한 흑백의 세계, 명백한 강간만 강간이고 나머지는 아니라는 세계는 법원에게는 매우 안전했다. 그러나 문제가 하나 있었는데, 이것은 실제 현실과 달랐다. 현실은 ‘명백한 동의’와 ‘명백한 강간’, 그리고 그 사이의 아주 넓은 회색지대로 이루어진다(15쪽 아래 그림). 항거 불능까지는 아니지만 중대한 위협을 느껴 응하는 성관계, 원하지 않지만 불이익이 두려워 응하는 성관계, 원하지 않지만 남성에게 미안함이나 죄의식을 느껴 응하는 성관계 등등. 이 회색지대는 명백한 흑백지대보다 훨씬 넓고, 단계 구분이 불가능할 만큼 연속선상으로 이어져 있다.

권력은 현실의 회색지대를 무시하고 안락한 흑백의 세계를 고집할 수 있는 힘이다. 회색지대를 다룬다는 것은 법원이 안락한 흑백의 세계를 포기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법원이 그러도록 만드는 어떤 힘이 작동한다면, 그것은 고전적인 의미의 권력이동이다. 첫 번째 장면은 1990년대에 나왔다. 이 시기에 강간죄 등 성폭력범죄의 보호법익이 ‘부녀의 정조’에서 ‘성적 자기결정권’으로 바뀐다(18~19쪽 기사 참조). 여성을 ‘남성을 위한 정절의 보관자’가 아니라 ‘동료 시민’으로 겨우 출발선에 세운 시점이 이때다.

더 의미심장한 권력이동은 2005년에 등장했다. 이 해에 대법원은 한 성폭력 사건을 다룬다. 피고인은 자신이 운영하는 노래방에 속칭 ‘노래방 도우미’ 여성을 불러 힘으로 제압하고 강간했다. 1·2심 재판부는 모두 무죄를 선고했는데, 피고인이 방 밖으로 나갔을 때도 피해자가 방에 머물러 있었고, 때리거나 협박한 사실이 없고, 피해자가 사력을 다해 저항하지 않았으며, 피해자 진술에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등의 이유였다. 대법원은 이를 파기한다. 대법원은 “피해자가 성교 당시 처하였던 구체적인 상황을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하며, 사후적으로 보아 성교 이전 현장을 벗어날 수 있었다거나 사력을 다해 반항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섣불리 (강간이 아니라고) 단정하여서는 안 된다”라고 쓴다(2005도3071). 

김영란 대법관이 택한 두 번째 전략

이것은 법원이 안락한 흑백의 세계에 더 이상 머물 수 없다는 선언이었다. ‘구체적인 상황을 기준으로 판단’하라는 표현은 현실의 회색지대에 발을 들이고 그 불확실성을 성실히 감당하라는 요구였다. ‘섣불리 단정하여서는 안 된다’라는 표현은 판사들이 ‘진정한 피해자’ 상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강간 통념을 벗어나라는 요구였다. 이제 법원은, 피해자 여성이 청바지를 입었거나 다음 날 가해 남성의 팔짱을 끼고 쇼핑을 했으니 강간이 아니라는 식으로 기계적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가이드라인을 갖게 되었다. 

이 판결은 최협의설 자체를 뒤엎지는 않았다. 다만 성폭력 사건의 넓은 회색지대를 인식하도록 하면서 ‘최협의설의 최협의적 적용’을 완화했다. 2017년 춘천지방법원 홍진영 판사(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논문 <국민참여재판에 따른 성폭력범죄 재판 운용의 실무적 개선방향에 대한 고찰>을 보면, 이 판례는 2017년 9월까지 하급심에서 470회 인용되어 확실한 선례로 작동하고 있다. 

2005년 대법원 판결 당시 사건의 주심은 김영란 대법관이었다. 헌정 사상 다섯 번째 여성 판사이자 최초의 여성 대법관이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이 임명했다. 노 대통령은 사법부의 다양화에 관심이 컸고, 인사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했지만 최초로 여성을 헌법재판소장으로 지명한 이력도 있다. 현실정치에서 일어난 권력이동이 사법부에서 젠더 권력을 이동시켰다. 그 결과로 탄생한 여성 대법관은 기념비적 판례를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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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사인